2007/10/08 12:36

[동아시아의 오늘과 내일](27) 내재화되는 버마 민주화 시위

-침묵의 저항은 계속된다-

버마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국적 반정부 시위가 국제적 관심사가 되었다. 이번 시위가 주목받은 것은 최근의 일이지만 사실 처음 시위가 시작된 것은 8월19일이었다. 한 달 반 동안 계속되어온 것이다. 유엔(UN) 특사의 방문을 앞두고 군부는 사망자만 200명 이상 나올 정도로 시위를 강경하게 진압했고, 시위가 어려워지자 시위대는 당분간 특사의 활동을 지켜보기로 했다. 이를 본 외신들은 시위가 소강 상태라고 보도하고 있고, 군부는 시위가 진압되었다고까지 선언했다.

하지만 외신들의 관측이나 군부의 희망과는 달리 버마 시민들의 저항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더욱 확산될 것이다. 군부는 이번 시위의 원인을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승려들에 대한 강경 진압 과정에서 잃은 것이 더욱 많다. 반면 민주화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지지는 날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알려져 있듯이 처음 시위를 촉발시킨 것은 경제적인 이유였다. 8월15일 정부가 갑자기 석유값을 2배로, 천연가스 가격을 4배로 인상하면서 버스 운행까지 마비시킬 정도로 경제가 어려워진 것이다. 그런데 이같은 경제난의 배후에는 군부독재가 있다. 군대 유지와 수도이전에 막대한 비용을 쏟아부은데다 고질적인 부정부패로 인해 재정이 고갈된 군부가 연료값 인상을 시도했던 것이다.

한편 시위가 급속하게 확대된 것은 9월5일 승려들의 시위가 군부에 의해 무력진압되면서부터이다. 승려들에 대한 무력 진압은 불교 국가인 버마 국민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군부가 수많은 사찰을 포위하고 승려들을 감금했지만, 여전히 전국승려연합회는 총파업을 계속하고 있다. 비록 거리에서의 시위는 불가능하게 되었지만 절 안에서의 기도 형태로 시위를 하고 있다. 또한 군부의 시주를 받지 않고 완전히 관계를 단절하고 있다. 90년과 달리 큰스님들도 군부에 협조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군사정권은 역대로 불교를 이용해 이미지를 개선했는데 이것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일반 시민들의 변화다. 표면적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이번 시위가 이렇게 커진 이유 중 하나는 민주화 운동의 저변이 일반 시민들로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의 민주화운동은 정치운동 중심이었지만, 2000년대 이후 석방된 ‘8888 민중항쟁’ 지도자들의 일부가 일반 시민들의 민주화운동 참여를 중시하면서 기도, 서명운동, 가두행진, 민주화운동 기념행사 등 일반 시민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운동들이 확산되었다.

시위 초반 군부는 학생 지도자들만 체포하면 잠잠해질 것으로 판단하고 학생지도자 13명을 비롯해 200여 활동가들을 체포했지만, 지도부가 없는 상태에서도 시위는 한 달 반 동안 계속되고 있다. 강경 진압으로 거리 시위가 어렵게되자 시민들은 저녁 8시부터 9시까지 TV나 라디오를 시청하지 않고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저항하고 있다. 군부독재 통제 하에 있는 TV나 라디오에서 잘못된 보도를 하기에 보지도, 듣지도 않겠다는 것이다. 절에 감금된 승려들이 시주를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자 시주를 보내는 운동도 벌어진다. 이 역시 저항의 한 방식이다.

군부가 시위를 강경 진압하는 데 성공한 것 같지만, 사실 군부는 시민들을 두려워하고 있다. 8888 민주항쟁 때에는 시위 장소에서 사망자들이 많이 발생했지만 이번에는 시민들의 눈이 두려워 시위 장소에서 죽이기보다는 한밤중에 몰래 죽이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군인들 중에서도 승려들과 시민들에 대한 강경 진압을 반대하는 움직임이 있다. 99여단 소속의 태 윈(Htay Win) 장군은 아들과 함께 지난달 26일 소수 민족 무장 투쟁 단체인 KNLA으로 도망쳐왔다. 스님들에게 발포하라는 명령을 따르지 않아서 체포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또다른 장군 3명이 발포 명령을 거부하여 현재 구속될 위기에 처해있다는 소문도 있다.

시위 초기에 군부가 군인 대신에 시위 진압에 동원한 깡패들 역시 더 이상 동원하기 어렵게 되었다. 깡패들은 호구지책으로 시위를 진압하는 일을 했지만, 군부가 승려들을 집단적으로 체포, 살해하면서 동원에 나서길 주저하게 되었다.

많은 시민들이 버마에서 자유가 시작됐다고 말하고 있다. 이번 시위 이전에는 정부의 감시가 두려
워서 여러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는 인권과 민주화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시위를 통해 시민들은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 반면 군부는 시위의 원인을 해결하기는커녕 강경진압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버마 시민들은 승려들의 시위가 계속된다면 2007년이 가기 전에 버마의 민주화가 시작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마웅저|버마 민주화운동가·함께하는시민행동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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