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웅저일기'에 해당되는 글 55건

  1. 2010/07/16 버마 작은 나무 소식(6월)
  2. 2010/06/05 "버마 작은 나무 소식(4~5월)" (6)
  3. 2009/12/29 한국과 태국에 왕래하면서 활동하고 싶었습니다. (2)
  4. 2009/08/11 8월 8일(토요일) (1)
  5. 2009/08/04 이우 고등학생들이 준비한 버마 민중항쟁 기념행사
  6. 2009/04/14 태국 영치우 노동자연합을 다녀와서
  7. 2009/03/23 고마워요, 친구들 (1)
  8. 2008/11/15 이제야 통장을 만들 수 있고, 비행기를 탈 수 있습니다! (2)
  9. 2008/11/12 이주민 시민활동가의 오체투지‏
  10. 2008/11/12 잘 다녀오겠습니다
  11. 2007/04/13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5)
  12. 2006/10/30 아이 친구의 편지 (1)
  13. 2006/02/03 마웅저씨 행정소송 1심 승소! (7)
  14. 2005/11/21 태도를 바꿔!
  15. 2005/11/11 마웅저씨 인터뷰 기사입니다.
2010/07/16 23:51

버마 작은 나무 소식(6월)

책상 옮김

6월부터 마포역 근천에 있는 사무실로 출근했어요.

저는 치과 선생님들이 저녁에 세미나 하는 방을 낮에 사무실로 쓰고 있어요.

그 사무실에 새로운 단체를 만들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함께 준비하고 있는

분들은 직장인들이라서 사무실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요.

하지만 놀러오는 사람들이 좀 있어서 행복했어요.

 

준비 모임은 ‘마웅저와 함께’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어요. ‘마웅저와 함께’는

2004년부터 지인들이 만든 모임 이름이에요.

그는 새로운 단체의 이름을 만들기 전까지 쓰기로 했어요.


요리사 준비

오는 7월 25일 ‘버마 어린이 도서관을 위한 이야기 마당’행사

준비 모임에 계속 참여하고, 그 행사에 ‘마쉐프의 버마 카페’를 맡았어요.

저는 다른 것은 못하지만 요리는 잘 한답니다. ㅋㅋ


평화 기원

6월 20일 저는 버마 활동가들, 버마 이주민들, 한국 사람들과 함께

‘아웅산수지’ 여사 65세의 생일을 맞아 버마 시민들의 평화를 향한

행사를 부천에서 열었어요.

인터뷰

6월 20일은 세계 난민의 날이에요.

보통 한국 언론에서 난민에 관한 기사가 거의 나오지 않지만 세계의 난민의

날을 맞아 기사가 나왔어요. 어떤 신문에서 저의 인터뷰가 나왔고,

6월 21일 MBC라디오 ‘박혜진이 만난 사람’에서 난민과 관한 내용을

다른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를 했어요. 난민 인정자인 마웅저가 시민단체를 만들려고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좀 나왔어요.  심심할 때 들어보시길 -_-;; 


저희도 시장

7월 1일 부천시장 취임 행사에 참여했어요. 저희(난민)들에게 투표권이 없지만 부천에

사는 한 시민으로 부천 시민들이 뽑는 시장은 저의 시장이라고 생각하고 축하했어요.

 

그 전 6월 15일에 저는 ‘부천시장 인수위원회 자문위원’으로 위촉을 받았어요. ㅋㅋ

김만수 시장님께서 ‘시민이 시장입니다’라고 하셨어요. 그럼 저도 시장이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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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5 23:21

"버마 작은 나무 소식(4~5월)"

  이제 태국-버마 국경지역에 다녀 온지 3개월이 되었네요.

태국에 다녀와서 놀고 있는 시간이 많아진 것 같아요.

전에도 놀고 있지만 요즘은 더 놀고 있다는 말이에요. ㅋㅋ


축하해 주셔야하는 일이 있어요.

저는 그 동안 자동차 운전학원에 다니며 면허를 땄어요. 필기시험과 같은 시험들이

어려웠지만 난민으로 살고 있는 저에게는 공무원들과의 관계가 더 힘들었어요. ㅎㅎ

2008년 말에 하늘에 한 별을 땄어요.(난민 인정- 증면서)

2010년에도 하늘에 또 하나의 별(운전면허)을 땄다고 느껴질만큼 큰 일이었어요.


지난 4월은 버마의 새해라서 한국에도 버마의 신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동료들과 함께 했어요.

보통 주말에는 동료들과 지내고 있어요. 평일이라면 지인들을 찾아뵙거나

동료들과 함께 버마 군부독제 대사관 앞 기자 회견, 일일 시위에도 참여하고 있어요.


자주 청소년들과 대화를 하기도 하고, 3주내내 외대 “동남아시아 사회와 문화”수업에

강연도 했어요. 오래전부터 청소년과 대학생들에게서 배우고 했던 것들을

이제 어딘가에 써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또 이주민 좌담회에 참여해서 난민의

삶에 대해 발표했을 때 이주 결혼 , 중국동포 등과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듣고

저 자신에게도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했어요.


요즘 번역하는 일도 하고 있어요. 20페이지 정도 있는 이주노동자와 관련된 자료를

번역하면서 10년 전부터 해온 이주 인권 운동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한국 내 이주민들의 앞으로가야하는 먼 길에 대해도 고민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한국 노동자 운동의 역사와 이주민 운동의 역사를 군부 독재 아래에서

살고 있는 버마 시민들에게 알려줄 수 있으면 큰 도움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앞으로 계획에 대해 소개해 드리고 싶었어요. 한국과 태국에 왕래하면서 할 수 있는 활동을

지인들의 도움으로 준비하고 계획하고 있어요.

또한, 9월 “이주운동 활동가 독일 연수”(13박 14일)참여하기 위한 준비도 하고 있어요. ㅋㅋ.


행복하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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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9 23:06

한국과 태국에 왕래하면서 활동하고 싶었습니다.

내일모레면 2010년 새해가 시작되네요. 저는 이제 한국에 온지 15년이 되었습니다. 지난 15년이나 20년 내내 걸어 온 길에 대해 후회한 것이 별로 없고, 앞으로도 그러게 살아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1988년 버마의 8888민중항쟁에 참여하 때 우리가 열심히 운동하면 2년 안에 군부는 무너지고 민주화도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저의 운동을 2년으로 계획을 했습니다. 한국에 올 때도 마찬가지로  2년 후에 버마로 돌아 갈 수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2년씩 연장은 지금은 20년이 되었습니다.


한국 생활 15년 동안 살아온 길에 함께해주는 많은 사람들의 덕분에 잘 살 수 있습니다. 저는 2008년 9월 난민 인정을 받기까지 한국의 난민 문제와 버마 아동교육 지원, 고국 버마 민주화문제 등을 위해 활동 해왔습니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다양한 활동을 하면 살아온 저는 내년부터 현장을 좀 바꿔서 활동할 생각입니다. 한국과 태국을 왕래하면서 활동하는 것입니다.


11월 3일부터 12월 10일까지(5주)  태국(메솟)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을 방문한 이유는 제가 메솟에서 하려고 하는 교육프로그램 준비를 위한 현지조사를  때문입니다. 태국(메솟, 치앙마이)에 있는 버마 교사들, 활동가들, 전문가들, 정치단체들, 태국인들 등을 찾아 만났습니다. 그리고 학교를 다니고 있는 버마 학생들에게 설문조사도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예전부터 아이들의 교육 지원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활동을 해왔습니다. 이번 태국에 다녀와서 메솟(태국)에 버마'청소년들을 위한 교육센터'를 만들어서 일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후 동료들과 한국 친구들에게 저의 고민에 대해 알리며 도움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저의 고민을 듣는 대부분 사람들은 제가 한국과 태국에 왕래하면서 활동하는 것에 대해 좋게 봐주시고 마음으로 응원해주고 있습니다.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2010년을 시작하러 오는 1월 4일에 이우 고등학생들과 메솟으로 갑니다. 이우 고등학생들은 10박 11일 해외 통합 기행 일정을 마무리해서 한국에 돌아오겠지만 저는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센터'를 만들기를 위한 현지조사를 더 하고 한국에 돌아올 예정입니다.


현장을 바꿔서 활동하고 싶은 많은 이유 중 두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공부를 하고 싶어도 고등학교나 대학을 가지 못하는 버마 십대들이 열심히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한국 사회에서 15년 동안 배워온 것들을 한번 확인하고 싶기도 하고, 써 보고 싶기도 합니다. 제가 고민하고 있는 그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기원해 주시고, 계속적인 관심을 가져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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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1 01:37

8월 8일(토요일)

지난 토요일 버마의 8888민중항쟁 21주년을 기념해서 기자회견, 캠페인 등을 했습니다. 이번 버마의 민중항쟁 기념일에 이우 학생들은 열심히 참여했습니다. 이우 학생친구들은 (오전 11시~12시) 대사관 앞 NLD한국지부가 준비한 기자회견에 참여하고, 학생들이 직접 준비한 버마 정치범 석방 서명 캠페인, 버마 난민 아이들을 위한 모금 캠페인을 했습니다.

이우학생들이 준비한 명동 예술 극장 앞 캠페인에 NLD한국지부, 버마 행동, 버마 공동체 등의 버마 활동가들, 한국 시민단체 활동가들, 대학생과 시민들도 참여했습니다.


정말 평화로운 하루가 되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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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04 01:32

이우 고등학생들이 준비한 버마 민중항쟁 기념행사

98년 후 부터 매년 한국의 버마(미얀마)인들은 버마의 8888(1988.8.8)민중항쟁 기념행사를 해왔습니다. 맨 처음에 버마인들만의 행사에서 한국인 대학생들, 시민단체들, 일반 시민들, 종교인들, 정치인들도 참여하는 행사가 되었습니다. 이번 8월 8일 버마 민중항쟁 기념일에는 고등학생들도 참여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도 몇몇 고등학생들은 개인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번 고등학생들의 참여는 예전과 조금 다릅니다. 행사를 직접 준비하고 서명캠페인, 모금 캠페인 등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친구들이 행사까지 하면서 버마 민주화를 위해 나서는 이유도 분명합니다.
 



이 친구들은 버마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며, 버마에서 군부를 피해 온 난민들과 민주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버마 민주화 운동가들이 거주하고 있는 버마-태국 국경지역까지 다녀온 친구들입니다. 이 친구들은 국경지역에 방문했을 때 많은 버마친구들을 사귀었습니다. 이제 그 친구들에게 버마는 남의 나라가 아니라 친구들의 나라입니다.


 오는 8일 친구들의 나라(버마) 평화를 위하여 NLD한국지부가 준비한 버마 군부독재 대사관 앞 “버마 민중항쟁 기념 기자 회견”에 참여하고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명동 예술극장 앞에서 문화 행사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버마 정치범 석방을 위한 서명캠페인, 버마 난민 아이들 교육 모금 캠페인 등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다른 고등학생들과 시민들에게도 제안하고 있습니다.


버마 사람들은 학생 친구들의 제안을 감사하게 받았습니다. 한국 학생들, 시민들도 친구들의 아시아 연대 활동, 평화 활동에 참여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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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4 13:17

태국 영치우 노동자연합을 다녀와서

"지학순정의평화기금" 제48호 들빛회 소식지에 쓴 글입니다.
http://www.justice.or.kr/bbs/data/column/소식지48호.pdf

난민 인정을 받은 후 공식적인 첫 해외여행을 다녀왔습니다. 2009년 11월 15일부터 26일까지 태국과 버마의 국경지역의 작은 도시인 매솟이 저의 첫 여행지였습니다. 이 지역은 버마로 부터 유입된 불법이주민들과 유엔난민기구(UNHCR)에서 운영 중인 공식 난민캠프들이 있는 지역입니다. 또 이곳에는 반 군부 단체에서부터 여성, 이주노동자, 아동을 위한 다양한 단체들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방문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메일과 전화로만 만나던 여러 선, 후배 동료 활동가들과 함께 국경지역에서의 활동 이야기와 지난 십 여년의 한국 활동에 대한 사항 등을 나누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동안 가보고 싶었고 만나고 싶었지만 난민 인정을 받기까지의 절차가 십 여년 동안이나 지속되는 관계로 어쩔 수 없이 메일과 유선으로만 의견을 나누고 했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가보고 싶었던 영치우 노동자연합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곳을 방문하고 싶었던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한국 국내 이주민 인권과 태국 국내 이주민 인권 상황에 대해 비교하고 싶었고, 영치우 노동자연합 활동가들의 삶에 대해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2004년 지학순정의평화상 시상식 때 영치우 노동자연합이 수상자로 모스웨(Mr.Moe Swe)선배를 한국으로 보냈기 때문에 두 번째 만남을 하고 싶어서 였습니다. 

  한국에서 이주민으로 오랜 동안 살아왔던 저는 매솟에 있는 버마 이주민들의 삶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활동하고 있는 제가 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주민들보다 좋은 환경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한국에 있는 이주민들 보다 태국에 있는 이주민들이 잘 하는 일들도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일들인데, 태국에 있는 버마 이주민들은 스스로 학교, 병원 등을 설립해서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매솟에 있는 버마 사람 대부분은 불법체류 신분이기 때문에 그들이 만든 학교, 병원, 노동조합 등도 모두 불법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매솟에 불법체류자 단속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이야길 듣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버마 이주민이 설립한 “메타오 크리닉”은 1989년 2월에 설립하여 올해로 20주년을 맞이 하게 되었습니다. 1999년 7월에 시작한 영치우 노동자연합도 설립 10주년 기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영치우 노동자연합을 방문했을 때 경기도 부천에 있는 버마 공동체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공동체는 부천외국인노동자의 집 이외에 다른 많은 한국 시민단체들이 물심양면으로 함께 해 주십니다만, 태국에 있는 영치우 노동자연합은 멀고도 험한 여정을 헤쳐 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힘든 가운데에서도 노동자들은 서로 돕고, 나누며 한 걸음 한걸음 희망의 걸음을 내딛고 있습니다. 재정적인 어려움에 처해있으면서도 영치우 노동자연합은 도서관, 연습센터 등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함께 연대하는 단체들도 하나 둘씩 생기고 있었습니다. 제가 방문한 2008년 11월23일에는 영치우 노동자연합에서 주최하는 세미나가 있어 현지 노동자들과 함께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방문하는 손님을 친절하게 맞이해 주는것은 한국이나 버마나 비슷하지만 특별히 모쉐 선배와 영치우 노동자연합 활동가들은 나에게 더욱 친절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2004년 당시 영치우 노동연합이 아주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을 때 지학순정의평화기금에서 보내준 따듯한 응원과 연대에 대한 감사의 표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제가 한국 사람은 아니지만 광주 5.18재단, 지학순정의평화기금, 한국 드라마 등 여러 가지 한류의 영향으로 그 지역에선 제가 한국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도 너무나 큰 환대를 받았습니다. 영치우 노동자연합 활동가들과 이런 저런 이야길 나누다 ‘Deposit’이라고 하는 보증금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한 달에 한번 월급을 받고있지만, 보통 10일, 15일, 20일 단위로 정산되어 월급을 받게 됩니다. 회사가 외국인 노동자들의 월급을 계산할 때 월말까지만 계산하다 보니 10일, 15일, 20일짜리 월급은 항상 회사에 남게 됩니다. 한국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로 ‘Deposit’(보증금)문제가 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그 돈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매솟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한 노동자가 “10년 전까지는 매솟에 있는 회사들은 이런 제도가 없었는데 한 한국인 회사가 그런 제도를 시작하면서 주위에 있는 회사들까지 점점 퍼져간다”고 말했습니다. 그 제도가 한국 회사에서 시작했다는 것에 대해 사실인지 확인할 수 없지만, 그 사람의 이야기 때문에 한국에 온 제 어깨가 더욱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활동하면서 국제사회와 연대를 하고 노력하는 영치우 노동자연합 활동가들의 이야기 하나 하나가 한국에 살고 있는 제게 큰 힘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에게서 받은 만큼 많이 돌려드리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려운 시기에 관심과 연대를 보내 주신 지학순정의평화기금에 버마사람들의 마음을 대신하여 다시 한번 감사와 연대의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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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3 18:03

고마워요, 친구들

"상상력과 용기로 대한민국 바꾸는 10대들 "책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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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다녀온 한국 청소년들은 버마라는 나라는 하나의 민족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다양한 민족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 나라임을 한국 사회에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한국 사회가 버마의 군부독재의 문제를 인식하고 인정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버마인들과 함께 힘을 쓰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의 해외 교류활동을 통해 동남아시아는 가난한 지역 그리고 투자와 관광 지역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이제는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친근한 아시아로 만들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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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5 01:04

이제야 통장을 만들 수 있고, 비행기를 탈 수 있습니다!


반정부민주화 투쟁을 하고 있는 저는  고향(버마)으로 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제가 갈 수 있는 곳은 고향과 제일 가까운 태국입니다. 태국은 버마와 국경을 하고 있고 그 곳에는 버마군사독재를 피해 이주해 온 난민들과 이주민 활동가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저는 그곳을 오래 전 부터 가보고 싶었습니다.  비행기 표 비용에 대해 돈을 모아주는 한국인 친구들도 있었지만, 저는 지난 9월 25일전까지는 한국을 공식적으로 벗어 날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한국을 떠 날 수 있는 방법은 강제 출국 혹은 스스로 버마로 가겠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방법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한국에 난민 인정을 받으면 무엇을 달라져나?

2000년에 저와 친구(버마 민주화운동 활동가)들 난민지위 신청을 했습니다. 그로부터 5년후인 2005년에 일방적인 불허 결정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변호사님들과 시민단체들의 도움을 받아 행정 소송을 진행 했습니다. 지난 9월 25일 대법원 1부(주심 차한성 대법관)는 저를 비롯한 8명이 법무부를 상대로 낸 난민인정 불허결정 취소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신청하지 8년만에 받는 난민인정 지위로 제가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여행증명서와 정식적으로 통장을 개설 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하지만 저희가 난민인정을 기쁘게 생각하는 것은 다른 나라들처럼 난민에 대한 지원이 있어서가 아니라 한국정부가 버마의 군부독재의 문제를 인식하고 인정했다는 점입니다. 


가고 싶은 이유

버마를 떠난 지난 14년 동안 저는 제 고향을 한번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난민지위를 인정 받은 지금부터는 버마의 민주화가 오기 전까지는 그 시간이 얼마가 되었건 저는 절대로 버마 땅으로 갈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욱 고향과의 가까일 곳에 가서 고향을 바라보고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하고 싶었습니다. 태국은 버마와 접한 5개 나라 중에 한 나라입니다. 저의 소개로 몇 년 전부터 해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은 버마-태국 국경지역에 다녀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욱 태국 국경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강해졌습니다. 그동안 저는 국경지역을 다녀온 한국 분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제 마음의 위안을 삼았습니다. 비록 국경에 간다 하더라도 고향에 살고 있는 친척과 조카들을 만나지 못하지만 국경지역에 있는 다른 조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버마가 보이는 국경지역에서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다 하고 동료들, 아이들을 만나고 다녀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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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2 01:40

이주민 시민활동가의 오체투지‏

오늘 2달만에 처음으로 일해와던 함께하는 시민행동에 출근했습니다.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제가 오체투지 순례단에 참여하는 기간에 예정대로 마포(서울)쪽으로 이사했습니다. 2주간 쉬다가 다시 사무실에 가더니 책상이 없어져다는 이야기들을 들어봤습니다. 하지만 시민행동의 새 사무실을 찾아 가보니 저의 자리가 준비되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반가워했습니다, 그리고 함께하는 시민행동 활동가 분들께 감사하고 미안했습니다. 저는 오체투지 순례단에 참여해서 잘 배우고 있으니 이사하는 것에 대해 도와주지 못했습니다.

오체투지 순례단에 많은 것을 배우고 다녀왔습니다.
버마 민주화를 위해 오래동안 투쟁 중심으로 해와던 저에게 오체투지 순례는 무척 신기하는 일, 매우 부러워하는 일이었습니다. 스님과 신부님은 2달동안 같이 생활하고 함께 오체투지를 하는 것을 보고, 두분 처럼 버마의 종교인들과 시민들도 다민족의 화해와 나라의 평화를 위해 언제간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수경 스님, 문규현 신부님께서만 배울 수 있는 줄로 생각해서 순례단에 참여하지만 순례중에 만나는 많은 신부님, 스님, 목사님과 시민들께서도 많은 것을 배우고 왔습니다. 진행팀의 팀장님부터 모두 분들의 덕분으로 저는 처음부터 끝가지 순례단에 함께할 수 있고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려움 것들

약2달 지리산 노고단에서 계룡산으로 순례길에 저에게 제일 힘든 것은 인터넷과 텔레비전 보기 어려움 것입니다. 그리고 아침 5시에 기산입니다. 맨처음에 제가 오체투지 순례단에 참여하는 일은 3주 밖에 못하 것 같았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 왜 그 생각하지는 잘 모릅니다만 제가 없으면 한국에서 버마의 민주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친구들은 활동하지 못하 가봐 걱정하는 것 같았습니다. ㅋㅋㅋ

큰 변화들

비가와도 오체투지를 계속하는 신부님과 스님의 뒤에 따라가는 왜래 피부가 검은 저에게 큰 변화가 많이 있다고 하면 그 중에 피부색이 더 검을게 되는 것이 아니까 싶었습니다. 2008년 오체투지 순례를 마무리하고 그동안 친구들이 해와던 일들을 보니, 제가 있는 것 보다 잘 되고 있습니다. 순례단에 참여해온 저도 인터넷, 텔레비전 등 없는 세상에서도 살 수 있는 자신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민주화의 길을 찾아가는 것은 투쟁하는 운동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방법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돼며, 그 방법들을 찾을 수 있는 자신들도 생긴 것 같았습니다.

오처장님이 보내주신 오체투지
수경 스님과 문규현, 전종훈 신부님의 사람의길, 생명의길, 평화의길을 찾아가는 오체투지 순례단에 오관영(함께하는 신민행동 사무처장)의 소개로 참여했습니다. 한국에서 조국 버마의 민주화를 위해 운동을 하면서 한국 시민운동도 배우고 있는 저에게 오체투지 순례는 배우기 정말 좋은 기획이 되었습니다.

지리산 노고단에 계룡산으로 순례 길에서 참여하는 사람들은 각자 생각의 차이가 있으며 행동도 다릅니다. 그리고 오체투지 순례길에 차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 중에 파이팅, 힘내세요 등 해서 지나가는 분들과 아무 말이 없이 기도하면서 지나가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저에게 찾아와서 감사한다는 말과 칭찬하기도하고 농단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미래의 버마 대통령”이라는 농단하는 분들에게 “오체투지 순례를 배우는 사람은 국회위원도 될 수 없는 것 같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수경 스님과 문규현, 전종훈 신부님 등께서 배운 것은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멋진 대통령들을 만드러는 일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 분들과 함께하는 동안 행복하는 것처럼 저람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나눠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현재는 그 분들의 과거가 되었는지 잘 모릅니다만 저의 미래는 그 분들 처럼 되고 싶은 마음으로 서울에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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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2 01:34

잘 다녀오겠습니다

저는 2008년 9월 4일부터 약 2개월 진행 예정하는 “기도-오체투지 순례에 참여하려고, 오늘 2일부터 집에서 출발했습니다. 순례인원은 문규현 신부, 수경 스님 및 진행팀 10여명으로 지리산에서 계룡산까지입니다. 오체투지 순례에 제가 참여하겠다고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했을 때, 친구들은 그 오체투지 순례의 의미와 목표, 그리고 제가 참여하는 이유 등을 너무나 궁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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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는 친구들에게 오체투지 순례의 의미와 목표에 대해 잘 서명할 수 있을 만큼, 알고 있는 것이 많지 않았습니다. 저는 멀어지고 있는 한반도 평화, 미래세대와 자연, 한국의 이웃을 위한 희망 등을 위한 길을 나서는 순례로 시작한다고 보고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또, 저는 사람들에게 듣는 지식으로만이 아니라 마음으로도 느끼고 싶습니다. 저에게 함께 사는 아시아로 나아가는 데 관심을 갖고 있는 친구들이 응원하며 "잘 다녀와"라고 했습니다.


저는 10년 넘게 한국에 살고 있지만 집이 있는 부천과 서울로만 다니면서 시간이 다 지나갔습니다. 이번 오체투지 순례를 통해서 제가 가본 적 없는 한국의 많은 지역들의 주민들도 만날 것입니다. 저의 눈으로 하나씩 확인하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다오면 친구들에게 새로운 생각들을 나눠줄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는 이 오체투지 순례에 잘 다녀오겠습니다.


2008년 9월 2일,

조계사 앞마당에서 마웅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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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13 11:24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저는 한국에 살면서 1년에 세번식 새해를 맞았습니다. ‘Happy New Year’라고 인사를 해서 새해를 맞이하고, ‘새해 복 많이받으십시오’라고 해서 새해를 맞이하며, 그리고 버마어로 ‘밍글라 아뻔냇 뻿송 바세’라고 해서 해마다 세 번의 새해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행복하게 새해를 맞이하는 한국 시민들을 보면서 저도 자연스럽게 행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사람들 중 버마의 새해을 알고 계신 분들은 거의 없는 것같습니다.


한국 사회속에 살고 있는 저와 같은 이주민들은 한국의 새해를 잘 알고 있으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를 하면서 선물도 주고 받은 일도 잘 하고 있습니다.

이주민들의 각 새해는 오래전부터 한국 사회속에서 진행되고있지만 한국의 진보와 보수 집단들로부터 언론까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한국 속에 있는 이주민들은 한국 사람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다면 이주민들이 먼저 만들고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 이 글을 쓰게되었습니다.


올해 4월 15일(12시~4시), 부천 종합운동장에는 버마의 신년을 기념하는 ‘제7회 버마 띤잔 (물)축제’를 합니다. 그리고 방글데시 소수민족인 줌마족의 새해 행사는 4월 14일(3시~6시) 마리 까페(안국역 1번출구)에 됩니다.


버마의 신년을 기념하는 띤잔(물)축제


버마는 1년에 12번 이상의 축제가 열리는데, 그날들은 버마력에 근거합니다. 한국의 추석과 같은 축제들도 있습니다. 12번 이상의 축제들 중 신년을 기념하는 띤잔(물)축제 는 버마 시민들에게 가장 행복하는 축제입니다. 축제는 매년 4월 중 약 4/5일에 걸쳐 진행됩니다.


버마에는 축제 기간동안


(1) 서로 물을 뿌리는 사람들

(2) 사원에 기도하는 사람들

(3) 한국의 탈춤이나 마당놀이 처럼 비판적인 공연하는 사람들 등으로

버마 사람들은 축제에 참여 합니다.


(1) 서로 물을 뿌리는 사람들

아는 사람이건 모르는 사람이건 불문하고 거리를 도라다니는 누구나 축복을 내려준다는 명목으로 누구나에게 마구 물을 쏟아 붓습니다. 뿌리는 사람은 뿌리는 대로 즐겁고 맞는 사람은 맞는 사람대로 즐거운 마음으로 물을 맞습니다. 서로 물을 뿌리하는 행위는 비유적으로 불결한 것, 불순한 것, 죄의 더러움, 추함 등을 물로 깨끗이 씻어버리고 새해를 정결히 맞아들인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집 앞에서나 거리에서 물 뿌리는 사람들은 함께 모여 물을 뿌립니다. 물을 맞고 싶은 사람들도 모여서 함께 걷거나 차를 타고 도라다니면서 물을 맞입니다. 물 뿌리는 장소에서 물 뿌리기도하고, 노래, 춤 공연도 진행합니다. 노래, 춤 공연팀, 물 뿌리는 팀, 그리고 버마의 전통 떡을 만들어서 나눠 주는 팀, 전통 세발을 만들어서 나눠주며, 적접 할아버지 할머님들의 머리를 감겨드리는 팀 등으로 재미있게 진행됩니다.  축제를 통해서 사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보수적인 버마사회에서 남녀는 함께 즐겁게 놀수 있는 축제가 별로없습니다. 그리고 버마에는 오늘 날에도 남자나 여자나 정통의 통치마를 입습니다. 통치마를 입는 이유 중 하나는 자기의 다리 모양을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한것입니다. 물 축제에서 남녀들은 신나게 같이 놀며, 물을 맞게 됩니다. 그리고 나면 다리 모양 뿐만이 아니라 몸 전체의 윤곽이 잘 드러나게 됩니다. 하지만 축제동안에는 이런 일들에 대해 부모님들은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2) 사원에 기도하는 사람들


띤잔(물)축제 때 사원에 가서 축제 기간동안 기도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 기도하는 사람들을 위해 음식을 제공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위해 봉사 팀 등이 많이 있습니다.

사원 밖에서는 시끄럽게 축제를 진행하지만 사원 안에 아주 경건하고 조용히 기도가 진행됩니다. 버마에 가 있는 외국인들도 버마 사람들처럼 사원에서 새해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고, 밖에서 물을 뿌리면서 새해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선택에 따라 행복한 축제에 참여 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한국의 탈춤과 마당놀이 처럼 비판적인 공연하는 사람들


독재가 통치하고있는 버마사회는 딴잔(물)축제 기간동안 얼마 정도의 자유가 있습니다. 어떤 활동가들은 일년에 한번식 나온 그 기회를 통해서 지방자치 단체 문제, 중앙 정부 문제 등을 노래로, 시로 만들어서 발표합니다. 마치 한국의 전통 놀이인 탈춤과 마당놀이 처럼 말입니다. 그 공연에 참여 하는 사람들은 지역 별로 팀을 만들어 축제의 4개월 전부터 준비를 합니다. 한 팀에 보통 30~40여명 이상의 사람들이 참여 하며 이들은 공연을 여기 저기 동에 돌아 다니며 공연을 합니다.


그 공연 팀의 차량에는 물 뿌리는 사람이 없습니다. 공연에 필요한 악기, 옷 등 물을 맞으면 안되는 것이 있기에 사람들은 불문율처럼 그 약속을 지키고 있습니다. 보통 공연은 저녁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진행됩니다. 평소에는 어떤식으로든 사회에 대한 비판할 수 없는 버마가 오직 축제 기간동안 비판적인 목소리들로 차고 넘치는 사회가 됩니다. 


1988년8월8일(8888)민주항쟁의 학생 지도자인 ‘민꼬 나잉’도 바로 이 공연 팀 출신입니다. 버마 사람들은 낮에는 물로 놀고, 밤에는 공연을 보고 하루 보냅니다. 이렇듯 버마의 띤잔축제는 물로 시작되었으면 다양한 방식의 축제로 진행되게 됩니다.


버마의 군부는 1988년 전까지 자유롭게 진행되었던 이 축제에 대해 1988년9월18일이후에는 진행 할 수 없도록 만들어 버렸습니다. 다른 나라의 독재와 비교할 수 없는 버마의 군부독재는 ‘자유’라는 단어조차 쓸수 없을 만큼의 암훅한 상황입니다. 비록 버마 안에 있는 사람들은 공연을 하지도 보지도 못하지만 해외로 와 있는 버마 사람들은 신년는 기념하는 축제를 통해서 서로 물을 뿌리고 맞고하며, 공연도 진행합니다.


서로 물을 뿌리하는 행위는 비유적으로 불결한 것, 불순한 것, 죄의 더러움, 추함 등을 물로 깨끗이 씻어버리고 새해를 정결히 맞아들인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새해의 꿈을 위한 기도이기도 합니다.


한국인 여러분에게는 불결한 것, 불순한 것 등이 없다 할지라도, 물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버마 사람들과 함께 버마 신년 물축제 '띤잔'에 즐겁게 동참해주시며, 버마의 평화를 위한 기원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 사 합 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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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30 17:07

아이 친구의 편지

올해는  알고 지내는  사람들 가운데 결혼하는 사람들도 많고, 유학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또 함께 공부 했던 베트남과 일본의 유학생 친구들 중 공부를 마치고 고국으로 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친구들에게는 시간에 따른 변화가 있는데 저에게는 변화가 없으니, 변화를 주고 싶어서 회원제로 운영해와던 저의 집( www.withzaw.net )를 블로그 시스템으로 전환했습니다.  ㅋㅋㅋ

2005년 7월 제기했던 난민인정불허처분취소 소송 1심 판결이 지난 2006년 2월 3일에 선고됐었는데 법무부가 항소를 하여 다시 난민인정불허처분취소 소송을 하고있습니다. 법무부 장관들 자주 바뀌는데 우리 문제는 변화가 없이 그대로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초,중,고등학생들과 같이 문화, 평화, 사회 등 이야기들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우고등 학교에서 학기(15주) 수업을 통해 버마어와 버마 사회문화를 배우고 함께 사는 아시아로 나아가는 첫 걸음을 만들고 있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 한국의 친구들을 보며 아시아의 구체적인 연대를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3년 전에 문화 공부를 통해 초등 학교에서 만난 어떤 친구를 지난 5월에 한국 친구(교사)의 결혼식 때 다시 만났습니다. 그 친구를 제가 잘 기억하지 못했습니다만 그 친구는 저를 기억 하고 3년 전에 제가 그 친구와 학생들에게 하는 버마 문화 이야기들에 대해서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때, 그 친구의 인사 말은 저에게 눈물이 날 만큼 반가워했습니다.


오늘 그 친구(중학생)에게 편지가 왔습니다. 그 편지는 보통 안부편지라고 볼 수 있지만 고향에 있는 조카들과 떨어져 있는 저에게는 소중한 편지가 였습니다. 마치 친 조카로 부터 받은 편지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 친구처럼 알고 지내는 친구들과 잘 모르지만 저의 상황과 이야기 때문에 보내 오는 어린 친구들의 안부 편지를 보면 한국에도 내 조카들이 많이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한국 아이들이 연대 활동은 잘 하고 있다는 생각을합니다.

함께사는 아시아로 나아가는 길에 이 친구들이 함께 하고 있다는 생각에 정말 기쁘고 힘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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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03 16:07

마웅저씨 행정소송 1심 승소!

지난해 7월 제기했던 난민인정불허처분취소소송 1심 판결이 오늘 선고되었습니다. 1명이 제외된 것은 아쉽지만 마웅저씨를 포함, 9명 중 8명이 승소하였습니다. 모두 축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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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21 13:22

태도를 바꿔!

* 그 아버지에 그 아들

한국과 버마는 비슷한 현대사를 갖고 있습니다. ‘1961년 한국’ ‘1962년 버마’는 일본의 군사 훈련을 받던 네윈(Mr. Nay Win)씨와 박정희씨에 의한 쿠데타로 군사독재의 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박정희씨가 빨리 사망했서 그런지, 버마사람의 입장에서 본 박정희씨는 악 조건이긴 하지만 화교 네윈 씨보타 좀 나다고 생각합니다. 화교 네윈는 버마 다민족 간 내전의 가해자입니다. 1974년에 바마식 사회주의 제도를 실시하고 버마의 해방운동가, 사회주의자들을 죽인 살인자도 바로 네윈입니다. 반공과 내전의 결과는 국가 폭력과 빈곤문제가 심각하게 발생하였습니다.

선배, 동지와 국가를 배신한 네윈의 유산을 제대로 받은 네윈의 군사적 아들(현 군부)은 2002년3월7일에 네윈의 사위와 외손자 3명을 쿠데타 기도 혐의로 체포한 뒤 네윈과 그의 딸 산다 윈을 연금조치했습니다. 네 윈의 사위인 애조 윈(54)과 네 윈의 손자인 아예 네 윈(25), 키아우 네 윈(23), 즈웨 네 윈(21)이 군부를 동원해 정부를 전복하려한 혐의가 인정되어 모두 사형을 선고를 받았습니다. 네윈은 연금 상태에서 2002년12월5일에 사망했습니다. 네윈은 세상을 떠나고 없습니다만 군부의 악령은 버마에서 계속 반복되는 상태입니다.

* 마약같은 복권

군부와 독재들은 건강이 좋지 못 할 때나, 아프면 외국으로 나가 치료를 받습니다. 빈곤문제와 국가의 국민보건 문제에 대해선 유엔과 국제사회의 자문들을 거절하고, 자신들이 자국의 문제를 잘 해결 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계속 주장합니다.

버마군부는 1974년에 버마식사회주의 제도를 만들고 나서 사회주의자들을 죽인 후, 1990년5월에 민주적 총선거에 선출된 의원들이 민주주의 국가를 수립하자라 는 주장에 대해 강제체포와 테러로 묵살해 왔습니다.
국민의 의견이 없이 1993년부터 진행 된 새 헌법이 아직도 정리가 하지 못합니다. 유엔의 의견을 무시하는 버마독재는 ILO국제노동기구가 강제노동 문제에 대해 요구 할 때 국제노동기구를 탈퇴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독재들은 섹스산업, 스포츠, 영화산업등을 국민들을 바보로 만들고 있습니다. 버마독재는 운세(점성술)과 복권 그리고 불교까지 이용합니다.

국민들은 지옥 같은 나라에서 공부 할 기회를 얻지 못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버마는 마약문제가 심한 만큼 점을 보고 복권이 맞는 날을 기대하고 있는 한탕주의문화도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복권을 팔고 점을 보는 군부와 점을 보고 복권을 사는 사회 버마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의 월급이 5000짝 밖에 받지 못합니다. 그런데 신문 하나가 100-300짝입니다. 침대 밖에 없는 병원들과 학생이 없는 학교의 문제에 대해 관심이 없는 버마군부가 수도를 이전합니다.

새 수도는 양곤에서 북쪽으로 320㎞ 떨어진 산악지대인 핀마나에 있습니다. "외부와 담을 쌓고 정글 전투만 해온 군인들이 세계로부터 고립되자 본거지로 돌아갔다"고 사람들은 비꼬았습니다. “오래된 양곤은 집권층 장군들에게 위험한 장소가 될 것"이라는 점성술을 다루는 국가기관이 있는 기관에서 예언이 나돌았습니다. 올해 초에 미국 국무장관이 북한, 이란, 쿠바 등과 함께 ‘폭정의 전초기지’로 지목했을 정도로 버마가 눈총을 받고 있기 때문에 마침 어떤 사람들은 "이라크 다음은 버마"라고 했습니다.

수도 이정에 대해 세계 어론까지 비판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악하고 무서운 것이 없는 버마군부가 미국이 공격할까 무서워 수도를 이전했다기 보다 점성가의 예언 때문에 그렇게 했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버마군부의 힘이 어디에서 나왔을까? 복권과 점성가들, 그리고 동남아시아와 중국 같은 국가들의 인권과 민주주의가 없는 외교관계라고 생각합니다.

발전을 위하여 마음과 태도가 바꾸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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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11 14:44

마웅저씨 인터뷰 기사입니다.

▌▌▌▄ 인•터•뷰 ▌▌▌
평화와 인권을 사랑하는 아시아의 시민이 되고픈 마웅쩌를 만나다.

인터뷰 및 편집: 『민주사회 교육』 편집팀

■ 2005년 4월 24일 4시 부천역에 편집팀 편집위원 4인이 모였다. 부천의 지리를 잘 모르는 관계로 택시를 타고 부천 외국인 노동자의 집으로 향했다. 부천 외국인 노동자의 집에 도착했을 때 오후 5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음에도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건물을 출입하고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꽤 많은 방이 있었다. 로비에는 수십 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반갑게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있었고 한 편에서는 교육을 받는 사람들도 있었으며 취재를 나온 KBS 촬영팀도 보였다. 최현자 사무국장님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마웅쩌를 소개받았다. 그는 웃으며 우리를 맞아 주었다. 녹차 한 잔과 함께 인사를 나누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민주사회와 교육 편집팀(이하 민주사회) : 이렇게 인터뷰에 기쁘게 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부담이 되시겠지만 편안하게 대답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우선 본인의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마웅쩌씨를 이전부터 알고 있는 분도 있겠지만 잘 모르시는 사회 교사 분들도 많습니다. 그 분들을 위해 자신의 소개를 간략하게 부탁드립니다.

마웅쩌: 저는 버마(미얀마) 사람입니다. 1988년에 한국의 민주화 운동처럼 버마에서도 민주화운동(8888항쟁)이 일어났어요. 저는 그 때 고등학생이었습니다. 대학 선배의 권유로 함께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고 그로 인해 신변의 위험을 받게 되었습니다. 94년에 말에 저의 선배나 친구들이 거의 다 체포당했어요. 그래서 해외로 도망 나오게 되었습니다. 한국으로 제가 버마에서 보았던 한국은 민주화의 나라였거든요. 그런데 들어와서 보니 한국사회가 생각만큼 그렇지 않았어요.
한국에서 들어온 것은 버마에서 할 수 없는 민주화운동하려는 것이었지만 우선 제가 부딪힌 것은 이주 노동자라는 저의 신분이었어요. 그리고 한국 사람들이 외국문제 특히, 버마의 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을 갖지 않았어요. 버마의 민주화 운동도 필요했지만, 당장 필요하고 할 수 있는 것이 이주 노동자의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부천 외국인 노동자의 집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다양한 부분에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민주사회: 저희도 부천 외국인 노동자의 집에서 현재까지 열심히 활동하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함께하는 시민행동’에서도 활동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자의 입장에서 운동을 하기 시작한 90년 중반부터 현재까지 많은 일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한국에서의 있었던 일, 지금의 삶에 대해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마웅쩌: 한국에서 버마가 민주화될 수 있도록 운동을 하고 싶었습니다. 버마민족민주동맹(NLD) 한국지부 활동을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1999년 2명, 2000년 1명의 버마 민주화운동가들이 체포당했습니다. 불법체류자로 말이죠. 그들이 버마로 추방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많은 운동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불법체류자로서 민주화운동을 진행하기 너무나 어려운 상황이어서 2000년 5월 NLD 한국지부에서 활동하던 저와 민주화운동 동지들 21명이 한국정부에 난민 신청을 했습니다.

2002년부터 2003년까지 성공회대학 NGO 대학을 다녔습니다. 한국의 NGO 운동을 좀 더 알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버마 민주화 운동, 이주노동자운동을 하면서 여러 시민단체들에도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 활동을 하다 지금은 ‘함께하는 시민행동’에서 인턴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공회대학에서 공부하다보니 한국말이 너무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해서 한국어도 더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해 지금 연세대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또한 작은 시민단체도 만들었어요. 버마 이주민, 난민들과 민주화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아시아 곳곳에 있습니다. 약 50만 명 정도는 될 것입니다. 그 사람들의 아이들이 있는데 학교를 다니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지원을 하고 있죠. 이주노동자들이 모금활동 등을 해서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는 작은 도움이라도 보태려고 합니다.

그리고 요즘은 너무 슬퍼요. 왜냐하면 앞에서 말한 난민신청의 결과가 3월 12일에 나왔는데 기각이랍니다. 한국 땅을 떠나라고 합니다. 5년 내내 아무 연락도 없다가 갑자기……. 이렇게 가면 3~4개월 후에 떠나야 합니다. 나 혼자면 모르겠으나 나 혼자가 아니라 9명입니다. NLD 4명 나머지 5명. 한국정부가 우리를 무시하는 것 같습니다. 버마의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현재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들과 한국의 시민단체들이 방법을 찾아보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 땅에서 버마가 민주화될 때 까지 운동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한국 땅에서 시민단체 활동도 하고 싶습니다.

민주사회: 이번 결정은 대단히 갑자기 이루어진 면이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정치적 고려가 있든 듯 합니다. 이번 결정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요?

마웅쩌 : 2003년 초에 3명, 2005년에 4명이 난민 인정을 받았습니다. 어느 정도는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도 난민 인정을 받은 그 친구들과 6~7년 동안 버마 민주화운동을 해왔습니다. 버마에서도, 한국에서도 해왔습니다. 한국에서 적극적으로 민주화운동을 하고 있는 것도 똑같습니다. 차이점은 그 친구들은 정당 운동을 통해 버마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것이고 나는 정치보다는 한국사회의 시민운동, 난민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한국정부의 난민 인정의 기준이 불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정부는 난민문제에 대해 투명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한국의 난민문제를 투명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민주사회: 3개월 연장이 되었다는데...

마웅쩌: 우리가 연장신청을 해 3개월이 연장이 되었습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 문제에 대해 포기하지 않고 난민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열심히 하려합니다. 시민단체와 함께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해가고 있습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행정 소송입니다. 그 외 다른 방법도 생각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를 위한 것이지만 한 편으로 한국정부의 난민정책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민주사회: 다른 이야기인데요... 버마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궁금증 입니다. 90년에 진행되었던 선거에서 아웅산 수지가 이끄는 버마 민족민주동맹(NLD)이 선거에서 승리를 했는데 정권이 이양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로서는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입니다. 아웅산 수지가 선거에서 승리했음에도 이것이 인정되지 않은 이유에 대하여 설명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마웅쩌: 69년 이후에 버마식 사회주의 정권이 세워졌으나 군부독재정권의 다른 이름이었을 뿐입니다.
1988년 까지 군부독재가 계속되었지요. 1988년 4월, 민주화 봉기가 전국에서 일어났습니다. 그 결과 군부정권이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다시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쿠데타를 일으킨 사람들은 버마 국민에게 약속을 했습니다. 90년 선거를 통해 정권을 이양하겠다고... 그러나 그들은 약속을 어겼습니다. 아웅산 수지 여사가 이끄는 NLD가 84%의 지지로 선거에서 승리를 했지만 그들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권력을 이양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아웅산 수지 여사를 감금하고 민주화 세력을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버마의 감옥에는 민주화 운동을 하다 잡혀온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의 많은 국가들,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버마의 민주화 세력 중 많은 사람들이 독재의 폭력을 피해 버마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은 지금도 민주화를 위해 싸움입니다. 그리고 버마에 남은 일부 세력은 무장 항쟁으로 자신의 투쟁방식을 바꾼 세력도 있습니다.

민주사회: 88년 이후 발생한 쿠데타를 보니 한국의 12․12, 5․17이 생각납니다. 상황이 좀 다르긴 하지만요. 버마에서 쿠데타가 발생한 이유에 대해서 간략하게 이야기해주십시오.

마웅쩌: 군부독재가 무너져도 그 뒤에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독재를 없애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 뒤의 문제보다는 쉬운 것 같습니다. 독재를 끝내고 그 뒤에 남겨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계속해 또 다른 군부독재가 등장할 것입니다. 버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파키스탄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독재가 무너지는 것보다 평화의 정신이 더 중요하고 생각합니다. 군부독재가 무너지더라고 평화정신이 없으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고 봅니다. 버마에는 소수민족이 많습니다. 많은 소수민족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군인들에 의해 살해되는 것을 보고 자랍니다. 군인들에 의해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은 아이들은 버마에 대항하여 총을 들고 싸우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버마의 평화는 없습니다. 민족간의 화해도 없습니다.

민주사회: 버마에서 국민들을 어떻게 통제하고 있는지 구체적 사례를 통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마웅쩌: 한국에 국가보안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버마에는 국가보안법보다 더한 법이 있습니다.
5명 이상의 사람이 모였을 때 ‘이상하다’, ‘의심스럽다’라고 판단되면 언제든지 체포할 수 있다는 법, 부모님 집에 가서 잘 때도 신고를 해야 하고, 마음 속으로 사람을 비난하거나 증오해도 법에 걸립니다. 완전히 통제되는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주사회: 버마 민족민주동맹(NLD) 한국지부 회원들이 몇 명인지, 그리고 그 곳에서 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마웅쩌: 지금 총 21명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는 2003년에 NLD에서 탈퇴했습니다.
NLD 회원들은 일주일에 한 번 씩 버마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합니다. 또한 한국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서명운동도 진행합니다. 그 밖에도 국회 앞 시위, 한국의 정당들에 우리의 문제를 알려나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탈퇴는 했지만 NLD 운동을 지지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그 단체의 운동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시간이 나면 NLD 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 NLD 한국지부 동지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운동을 모색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일은 함께 하고 있습니다.

민주사회: 버마의 사회에 대한 궁금증입니다. 버마도 한국과 같은 가부장적 사회라고 알고 있습니다. 버마의 여성, 사회의 분위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마웅쩌: 버마에 있을 때 어머니, 누나들의 삶을 옆에서 보았어도 여성의 문제를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했던 적이 없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약 70-80%가 믿는 종교가 불교입니다. 불교 안에서 여성과 남성은 엄격이 구분되어 있습니다. 부처는 남자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들은 조금씩 바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아웅산 수지입니다. 전통, 관습을 따르자면 여자를 한 국가의 지도자로써 인정한다는 것은 버마에서 있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아웅산 수지를 둘러싸고 이러한 논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알고 있듯이 버마의 다수의 사람들이 그녀를 민주화 운동의 지도자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버마 여성이 한국의 여성보다 낫다고 생각되는 것도 있습니다. 버마의 여성은 성이 없습니다. 한국처럼 아이가 아빠 성을 따르지 않습니다.

민주사회: 이주노동자에 대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이주노동자로서 보기에 94년도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은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그리고 한국의 이주노동자 정책 중 보완하거나 바뀌어야 할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마웅쩌: 한국의 이주노동자는 대략 40만 명 정도이고 이들의 대부분이 동남아시아인들입니다. 동남아시아 외국인 노동자들이 동남아시아에서 한국을 보는 것과 한국에 들어와서 보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지금은 조금 낫지만.... 저도 버마에 있을 때 한국을 잘 몰랐고, 언어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기회도 없었습니다. 한국에 와 이주 노동자가 처음 배우는 말이 욕입니다. 그것은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한국 노동자와 다른 부당한 대우들을 받습니다. 예를 들어 임금이나 노동조건의 차이가 그것입니다. 저도 처음 와서 7개월 동안 일했지만 6개월 치 월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일요일 쉬고 월요일 출근했더니 회사는 없어졌고 사장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도 없었습니다. 주위의 한국인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었겠지만 한국말을 못해서 물어볼 수도 없었습니다. 그냥 현실을 인정하고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화가 나서 한국인에 대해 나쁜 감정도 많이 가졌습니다. 사실 저의 경험은 다른 이주노동자들의 비해 힘든 상황이 아닙니다. 다른 이주 노동자들은 임금을 못 받는 것은 물론, 다쳐도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도 못하는 상황이 대단히 많습니다.
고용허가제가 얼마 전부터 실시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문제는 있지만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고용허가제가 아니라 노동허가제입니다. 우리 이주노동자들은 너무나 많은 부분에서 한국의 노동자보다 불평등을 경험합니다. 이러한 부분이 빨리 고쳐졌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동남아시아에서는 한류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한국의 많은 이주 노동자들의 동생들, 친구들이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 노래에 열광합니다. 그들이 한국에 대한 좋은 감정이 이주노동자 정책으로 인해 나쁜 감정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을 한국 정부가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한국 정부, 한국인들은 이주노동자의 문제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민주사회: 한국에서 지낸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한국사회의 모습 중 이해가 되지 않거나, 문제라고 생각하셨던 것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마웅쩌: 위안부 문제가 왜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그 문제가 발생한 것은 수십 년 전의 일인데 한국 시민들의 목소리가 나온 것은 95년 정도잖아요. 왜 그 동안 한국 시민들이 그 문제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는지. 또 왜 국가보안법이 아직 없어지지 않았는지 이해가 안갑니다.
그리고 우리도 다양한 민족들이 연대운동, 화해운동 하고 있는데, 왜 한 민족만 있는 한반도에서 화해가 힘든가도 저로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1988년에 우리는 소수민족들 간의 화해가 한 번 되었어요. 아웅산 수지 여사가 유명한 이유가 그거예요. 영국이 ‘해방을 원하는 것은 버마주이다. 다른 주들은 원하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 주장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영국이 ‘그럼 소수민족들이 원한다는 것을 보여줘라.’라고 요구했지요. 이 때 아웅산 수지 여사가 소수민족들에게 우리 같이 대항하자고 했습니다. 그것을 보면 버마와 같이 민족이 다양한 나라에서도 민족간 화해를 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한반도에서는 왜 (화해가) 안되는지 모르겠어요.

민주사회 : 민족주의는 그 국가의 경계를 넘지 못하잖아요. 민족주의를 허물 수 있는 중요한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마웅쩌: 제가 버마 안에 있을 때에는 민족주의는 제가 좋아하는 것이었어요. 한국에서 공부하면서 마음이 변했습니다. 우리나라는 (다민족국가라서) 민족주의가 강해진다면 소수민족 간 갈등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시아 국가들 중 민족주의가 표방하는 나라들이 생기게 되면 아시아의 평화를 유지되기 힘들어 질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지금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통일 운동,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에 제가 참여할 수 있는 한 참여하고 있습니다. 저는 통일 문제, 한반도의 평화, 국가보안법의 문제가 한반도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것은 아시아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아시아인이 비록 피부와 언어가 다르더라도 아시아의 문제, 아시아의 인권, 평화, 민주화는 아시아인의 힘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미국, 영국, 독일 등과 같은 강대국의 힘을 빌리지 않고) 그리고 제가 아시아인들에 강조하는 것도 민족주의보다는 인권과 평화, 그리고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사회: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신지 간략하게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마웅쩌: 고용허가제가 이전보다 나은 제도이지만 만족스런 제도는 아닙니다. 한국 정부가 노동허가제로 정책을 전환하도록 노력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버마의 민주화를 위해서, 한국 땅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활동하면서 버마의 평화나 인권 해결의 방법을 연구할 것입니다.

민주사회: 오늘 인터뷰한 내용은 사회교사모임 회지에 실릴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사회교사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씀이나, 사회교사들이 학생들에게 꼭 가르쳤으면 하는 것, 혹은 사회교사들이 이런 것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것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마웅쩌: 평생학습원에서 만난 당산초등학교 선생님들의 초대로 초등학생들을 몇 번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아이들을 만나면서 아이들이 참 똑똑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이들은 어떤 선생님을 만나는가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인권에 관심이 많은 선생님을 아이들이 만나면 아이들은 인권에 관심이 많아지고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됩니다. 평화에 관심이 많은 선생님을 만나면 평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요. 제가 만난 선생님들은 모두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보기가 좋았습니다.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일본을 미워하는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과거의 일본이 한 행위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은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일본 사람을 미워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좋은 것 같지 않습니다.
한국의 선생님들에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한국의 아이들이 동남아시아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미국, 영국, 일본만 알고 있습니다. 동남아시아에 대해 학생들이 잘 알 수 있도록 가르쳐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버마의 문제, 버마의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 이야기했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이러한 교육이 되지 않는다면 모든 동남아시아 사람들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이 평화와 인권에 많은 관심과 공부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민주사회: 정리하겠습니다. 장시간 인터뷰에서 많은 이야기들, 버마민주화운동에서 이주노동자 문제, 아이들의 문제까지 많은 이야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말씀하신 것 잘 정리해서 사회교사모임 회지에 실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교사들에게 마웅쩌씨의 생각과 의견을 잘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인터뷰에 응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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